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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ning

사진의 추억

by awn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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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아빠는 엄마에게 핀잔을 듣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엄마 몰래 책을 샀기 때문이다.

책을 사는 게 혼날 일이냐고?

그때는 그랬다.

그 당시는 전집이 유행이어서

책을 샀다 하면 무겁고 큰 책들이

금세 수십 권씩 집에 쌓이곤 했다. 

 

굳이 엄마 편을 들자면

박봉 공무원에 애가 셋에 집도 좁은데

관심 1도 없는 책이 수십 권씩 늘어가는 상황이

달갑지 만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 내 벗이 되어 준 건  다름 아닌

엄마가 그토록 치워버리고 싶어 하던 책들이었다.

아빠가 사 모으던 쓸데없는 전집들이

나의 유일한 장난감이자 세상을 보는 창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나는 친구와의 사귐이 어려워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딱히 가지고 놀 장난감도 없었기 때문에

글을 몰랐을 때는

책을 쌓아 집을 만드는 놀이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크고 무거운 사진 전집에 푹 빠져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유년기를 보냈다.

지금은 헌책방에나 있을 법한 열 권이 넘는 거대한 사진집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풍경으로 그득했고 
나는 사진 속의 세상을 매우 동경했다.

'안녕? 나는 awn이라고 해.'

 

사진집 속 세상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움직이지 않지만 힘이 있었고 마치 내가 가야 할 곳인 듯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적인 것 그 자체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달까,
그 정적인 것 안에서 무수히 다른 삶과 에너지를 느끼는 것 자체가 황홀했달까.

그리고 또 하나,

정적인 에너지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만큼 안심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의 감각도 많이 무뎌져 버렸다.

금방이라도 흩날릴 것 같은 머리칼 하나에도 전율을 느끼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세상을 조금은 알 것 같기에

남이 찍은 사진 말고

과거에 내 똥손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며 무수히 자극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장면 하나하나에는 수많은 사연들과 감정들이 담겨있어,

찍는 순간에 다 알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은

그 어릴적 나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었고

지금은 과거에 몰랐던 나를 알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사진은 평화로우나, 밑 빠진 독에 물 붓던 시절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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