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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ning

재수없는 질문하던 재수없는 놈

by awn 202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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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살아오며
겨우 반나절의 인연이었지만
정말 최고로 재수 없는 질문을 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몇몇 재수 없는 놈과 함께
내 인생에서 지난 17년간
재수 없는 놈 랭킹 상위권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지겨운 놈.

당시 스무서너 살이었던 우리는
어떤 모임에 참석해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모두 다가 유학생들이었다.

그 재수 없는 놈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유학을 온 것 같아 보였는데
다소 왜소하면서 하얀 피부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한껏 표독스러운 얼굴과 분위기로
극소심했던 자신을 포장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안타까움
그날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무관심한 척
도도한 척
모임에 참가하고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
그 재수 없는 놈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놈은 질문 위주로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때의 나는 컴플랙스 덩어리라서,
사적인 질문을 받는 걸 굉장히 힘들어했지만
첫 대면이기에 참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단 몇 분의 대화중에
돌연 그놈이 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밥숟갈이 몇 개냐는 그렇다 치고
부모님 직업, 부동산 개수까지 알려 드는 것이었다.
질문을 받으면서
속으로 오만가지 혐오를 느껴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왜 묻는 거지?'
'알아서 뭐하게?'
'이 새끼 친구 있나?'
'도시 회화 법인가?'
'내가 비정상인가?'
'나만 모르는 뭔가 있나?'
등등 혐오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뇌리에 남아, 지금도 사람 성향을 알아볼 때의 잣대로 쓰이고 있다.
그런 질문을 거리낌 없이 했던 그놈은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뉴스를 보면,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와 집평수, 차 종류로
편 가르기를 한다던데
마치
그 재수 없는 놈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제발 재수 있게 성장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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