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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량이 넓은 딸

by awn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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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고등학교 시절 빨간 양말에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멋쟁이였다. 내 기억에도 엄마는 언제나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예쁘게 단장한 모습으로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예쁨 속에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울화가 숨어있었다는 걸. 엄마는 젊은 시절, 아주 히스테릭한 사람이었다.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둘째 이모가 아기 때 몸이 약해서 죽고 둘째로 자라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은 듯했다. 집안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몸이 약하고 시력을 잃어가던 할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농사일이 바쁜 시기가 되면,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학교를 빠지고 일을 해야 했다.

엄마는 큰 이모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에 욕심쟁이라서 자기만 고생한 거라고 비난하곤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큰 이모가 장녀에다가 공부를 워낙 잘하는 수재라서 할아버지가 마음먹고 밀어줬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는 타의적 희생을 강요받아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다며 한탄했고 고생 없이 출세해 시집 잘 가 놓고도 자기 이익만 챙기는 언니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엄마는 이상이 높고 자신감 넘치는 완벽주의자였다. 정리정돈과 미학에 강박이 있어서 흐트러지는 꼴을 보지 못했고 남한테 보여주기 식의 허영심이 강했다. 예전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굉장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2021.11.22 - [awning] - 사진의 추억

사진의 추억

1980년대 후반 아빠는 엄마에게 핀잔을 듣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엄마 몰래 책을 샀기 때문이다. 책을 사는 게 혼날 일이냐고? 그때는 그랬다. 그 당시는 전집이 유행이어서 책

awn2021.tistory.com


나는 나와 성향이 반대되는 엄마가 부담스럽고 무섭고 두려울 때가 많았다. 특히, 엄마 취향의 옷을 입고 엄마 취향의 피아노를 배우면서 "이렇게 앉아봐, 인상 쓰지 마, 또박또박 말해"라고 타박받을 때는 늘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몹시 아픈 느낌이었다. 그래도 신기했던 건, 엄마임에도 편하지 않은 그런 엄마가 내 눈에는 또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엄마는 나를 사랑으로 양육했겠지만(그랬을 거라 믿고 싶다) 어린 나에게 많은 민폐를 끼쳤다. 지난 생일에, 엄마가 말했다. "다음 생에 또 내 딸로 태어나면 그 때는 정말 잘해줄게. 나도 많이 후회하고 있어."라고..
난 일찍이 엄마를 여자로 봤다.
관점을 바꾸면,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꽃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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