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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결벽증 : 꼬맹이 시점

by awn 202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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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우리 식구는 학교 근처의 18평짜리 연립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 인테리어 충이던 엄마는 베란다를 시공하여 아치형 벽을 만들었고 거기에 동양의 엔틱소품들과 꽃장식, 그리고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을 따라 만든 연못 형태의 수조를 두어 물고기와 거북이를 키웠다. 오줌싸개는 24시간 거기에 서서 물을 정화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수조 안에는 여러 형태로 컷팅이 된 색색이 돌들(아마 플라스틱)이 들어있었는데 나는 그 투명한 물 안에서 반짝이는 돌들을 보며 먼 미래에 보석이 가져다줄 황홀함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엄마는 결코 맥시멀 리스트가 아니었다. 딱 필요한 소품과 엔틱가구로 집안을 깔끔하게 꾸미길 좋아했다. 당시 잘 나가는 가구 브랜드는 지금은 몰락한 보루네오였는데 엄마는 안방 장롱과 언니 오빠의 책상으로 보루네오 가구를 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는 깔끔병이라는 게 있었다. 이모들 말에 따르면 엄마는 친정 살림을 도맡아 하던 청소년기 시절, 집에 사람이 오면 그 발꿈치를 따라다니며 걸레질을 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하면서 결벽이 없어졌네 뭐네 해도, 어른들은 모른다. 그 집 꼬맹이에게 그게 얼마나 큰 난관이었는지.

 

나도 어느덧 국민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면서 나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라떼는 <같은 반 친구에서 친한 친구로  승격되려면> 혹은 <친한 친구라면 응당>  그 친구의 집과 우리 집을 서로 왕래하여야 하는 관례?가 존재하였는데 아이들은 코흘리개에 발이 많이 지지했다. 사회성이 부족한 나에게도 깐부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수차례 주어졌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까무러치는 모습이 떠올라 매번 얼버무리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 몇 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은 반 친구를 데려와도 되냐고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다행히 엄마는 까무러치지 않았다. 대신 늘 침묵하며 외면했고 몇 번을 반복하는 사이에 그게 거절의 의미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나의 그런 조용하고 무시무시한 시도를 알 리 없는 친구들은 몇 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네 집에 가도 되냐고 묻다가 어색한 나의 얼버무림이 반복되자 더 이상 나에게는 같은 물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

 

깐부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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